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LOT 165편 납치 사건 (문단 편집) == 사건 이후 == 망명을 위한 것이었다고는 하나 엄연히 비행기를 납치한 것은 [[범죄]]였던 만큼 데트레프와 잉그리드는 항공기 납치 혐의로 템펠호프 공항 내의 [[주독미군]] 군법재판에 회부되었다. 잉그리드는 항공기 납치에 가담하긴 했으나 승객들에게 위해를 가한 일은 없다는 점 때문에 [[무죄]] 판결이 내려졌으나 데트레프는 --장난감 권총이기는 했지만-- 어찌되었든 간에 위력으로 승무원을 협박해 항공기를 납치했기에 9개월 [[징역형]]에 처해졌다. 그나마 망명 목적이 감안되어 [[정상참작]]된 결과였다. 한편 이들의 탈출을 돕다가 동독측에 발각된 호르스트는 동독 [[슈타지]] 형무소에서 기약없는 투옥 생활을 해야 했다. 동독은 국제여론을 의식해서 LOT 165편은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지만 호르스트는 [[괘씸죄]]가 더해져서 신병을 풀어주지 않았다. 잉그리드는 [[미국 정부]]에 호른스트의 석방을 위해 교섭해 달라고 탄원했지만 미국 입장에서도 호르스트를 빼낼 만한 방도가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자 잉그리드는 재판 과정에서 [[변호사]]의 조력 등이 없었기 때문에 [[인권]]을 침해당했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에 거액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배상금]]이 목적이 아니라 호르스트의 석방을 위해서 미국 정부를 움직이게 하려는 목적이 컸다. 결국 미국 정부는 잉그리드에게 소를 취하하면 호르스트를 석방하기 위해 동독과 협상하겠다고 약속했고 잉그리드는 소를 취하했다. 결국 호르스트는 무려 2년여가 지난 [[1980년]] 10월에야 석방되어 서독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사랑하는 잉그리드와 재회할 수 있었다. 이후 호르스트와 잉그리드는 [[1985년]] 결혼했다. 둘이 결혼한 지 4년 뒤인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독일 재통일|독일은 통일되었다]]. 호르스트는 [[2006년]] 사망했고 잉그리드와 데트레프는 각자 [[베를린]]에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분류:1978년 항공사고]][[분류:냉전]][[분류:독일민주공화국]][[분류:독일의 사건 사고]][[분류:서독-동독 관계]][[분류:하이재킹]]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